내가 한서연을 만난 건 서른한 살 때였다.
그때 나는 서울의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고, 사무실은 합정역 근처, 언제든 도시재개발로 철거될 것 같은 낡은 빌딩 안에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입사한 마케팅 기획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평범한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낮게 묶고 손에는 기획 자료 더미를 안고 있었다.
한눈에 기억에 남는 타입은 아니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그녀를 기억하게 된 건 입사한 지 사흘째였다.
그날 오후 회의에서 부장이 그녀가 일주일 동안 만든 홍보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숙여 자료를 정리했다.
회의가 끝난 후, 내가 다과실에서 커피를 타다 보니 그녀가 창가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그녀가 돌아서며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제안서요.」
「아, 그거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하면 되죠.」
말은 가볍게 했지만 눈이 확연히 붉어 있었다.
나는 들키지 않고 방금 탄 커피를 그녀 쪽으로 밀었다.
「마셔요.」
그녀가 한 번 보고 물었다.
「선배 거예요?」
「응.」
「그럼 선배는요?」
「또 타면 되죠.」
그녀는 감사 인사 없이 그냥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몇 초 후 그녀가 말했다. 「너무 쓰네요.」
나는 처음으로 이 사람이 좀 짜증 난다고 느꼈다.
그 뒤로 우리는 어쩌다 보니 친해졌다.
자리가 가까워서일 수도 있고,
함께 야근을 자주 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녀가 말이 많고, 내가 듣는 걸 별로 싫어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녀는 점심시간에 와서 저녁에 뭐 먹을지 물어보곤 했다.
「이도훈, 부대찌개?」
「어제 먹었잖아.」
「그럼 칼국수?」
「너무 멀어.」
「김밥?」
「아무거나.」
그녀는 내가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그럴 때마다 인상을 썼다.
「너 진짜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다.」
나는 보통 이렇게만 답했다.
「그럼 나한테 물어보지 마.」
그런데도 그녀는 매일 물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단둘이 술을 마신 건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회사 회식이 끝난 후 다른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고 하나씩 떠났다.
그녀는 홍대입구에 서서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집에 가?」
「그럼?」
「한 잔 더 해.」
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더 마실 수 있어?」
그녀가 말했다. 「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술자리에서 반쯤 마시자 그녀는 이미 테이블에 엎드려 전 남자친구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들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싫은 거야, 아니면 아직 좋아하는 거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둘 다.」
「그건 좀 곤란한데.」
「사랑은 원래 곤란한 거지.」
그녀는 말하고 다시 엎드렸다.
잠시 후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도훈아.」
그녀가 처음으로 성 없이 이름을 불렀다.
「왜?」
「몇 살이야?」
「서른하나.」
「나보다 세 살 많네.」
「그래서?」
그녀가 갑자기 웃었다.
「그럼 나 오빠라고 불러도 돼?」
내가 인상을 썼다.
「안 돼.」
「왜?」
「이상하잖아.」
그녀가 일부러 목소리를 길게 끌었다.
「오——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서연, 한 번만 더 하면 간다.」
그녀는 웃으며 다시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가끔씩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대부분 부탁할 때였다.
「오빠, 이 카피 좀 봐줘.」
「오빠, 오늘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줘.」
「오빠, 우산 안 챙겼어.」
나는 매번 귀찮아하면서도 한 번도 진짜로 거절한 적은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 둘을 함께 있는 걸 점점 당연하게 여겼다.
누군가 우리가 사귀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서연은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랑 그 사람이?」
그 말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그는 그냥 오빠 같은 사람이야.」
모두가 따라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날 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그 말을 계속 생각했다.
오빠 같은 사람.
사실 그 전까지 나는 우리가 도대체 어떤 사이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 그런데 친구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것 같고.
동료, 그런데 이미 동료를 넘어선 것 같고.
그런데 연인?
우리는 손을 잡아 본 적도 없고,
키스해 본 적도 없고,
좋다고 말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아닌 거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관계가 중간에 걸려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걸려 있으면, 자신조차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