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지정 연간, 괄창산에 고행하는 두타가 살고 있었으니 법명은 정일, 도호는 고봉이라 하였다.
이 승려는 원래 주부학에서 수석을 차지한 수재로, 어려서부터 혜근을 타고났다. 늘 요람 속에서 “이이오오” 하며 중얼거리기를 서당 학동이 책을 외우는 것과 똑같았다. 처음에 부모는 어린아이가 옹알이하는 줄만 알았을 뿐 마음에 두지 않았다.
후에 구름을 타고 다니는 행각승이 시주를 하러 왔다가, 하녀가 안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는 울 듯 웃 듯 하면서 입으로 계속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귀를 기울여 들으니,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 아이가 외우는 것은 《능엄대장진경》이다!” 하고 외쳤다. 당장 고승의 환생이라 단정하고 제자로 삼겠다고 하였다.
부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야승려를 욕하며 빗자루로 내쫓았다.
정일이 글을 배우기 시작하자 과연 과목성송이었으니 참된 신동이었다. 집안에서는 그가 과거에 급제해 영광을 가져오길 바랐으나, 그는 관직과 재물에 관심이 없고 오직 불법만 연구하니 아버지에게 수없이 매를 맞았다. 나중에 견디지 못해 시험을 보았는데, 한 번에 합격하여 부학에 들어가 조정의 녹미를 받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삼년상을 다 치르고, 제복을 벗은 날 조상의 재산을 모두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거친 가죽 주머니를 만들어 목어와 경전, 낡은 승복을 넣고 머리를 깎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하였다.
이후 아는 이는 “고봉 장로”라 불렀고, 모르는 이는 “가죽주머니 승려”라 불렀다.
이 승려는 절의 탐식하고 음탕한 화상들과 달라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으며, 여자의 몸을 뱀과 전갈처럼 여겼다. 스스로 세 가지 철계를 세웠으니, 하나는 시주를 받지 않고, 둘은 강단에 올라 경을 설하지 않으며, 셋은 명산 고찰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은자가 “왜 시주를 받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불도를 이루는 데 편한 길이 있겠는가? 반드시 근골을 수고롭게 하고 배를 굶겨야 하니, 굶주림과 추위의 칼이 뼈를 긁어야 한다. 몸이 추위와 배고픔을 겪으면 음근이 저절로 약해져 음욕이 일지 않으니, 마음의 사념을 뿌리 뽑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경을 설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불경은 부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라 부처님이 아니면 진의를 알기 어렵다. 범부가 설법하는 것은 미친 소리일 뿐”이라 답하였다.
명산에 가지 않는 이유를 묻자 “수행자는 욕망을 일으키는 것을 피해야 하니, 명산의 경치도 도심을 어지럽힐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탄복하였으나, 그는 이 세 가지 계율 때문에 더욱 명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불연이 있는 자만 제자로 받았으며, 그렇지 않으면 내쫓았다. 그리하여 반평생을 혼자 지내며 삼간 초가를 지어 수행하였다.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고 곤충이 울 때, 승려가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향을 피운 후 포단 위에 앉아 입정하였다.
그때 문밖으로 발소리가 들리더니, 준수한 청년이 두 서동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 서생은 용모가 맑고 풍류 있으나, 음탕한 복사꽃 같은 눈을 가졌다. 그 눈은 오직 여자를 훔쳐보는 데만 능하였다.
그는 멀리서도 여자의 몸매를 간파하였고, 눈빛으로 옷을 벗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눈을 가진 자는 정석한 사람이 아니니, 훗날 몸을 망치리라.
서생은 불상에게 절하고 승려에게 삼배한 후 서 있었다.
승려가 입정을 마치고 예를 갖추어 답례하였다.
두 사람이 앉아 대화를 나누었는데, 서생의 불법 이해가 뛰어나 승려가 놀랐다.
승려는 마음속으로 “이자는 천부의 영근을 가졌으나 음탕한 자이니, 놓아두면 많은 여인을 해치리라”고 생각하였다.
결심한 승려가 그를 타이르기 시작하였다.